방학 시작 1주일 후, 부랴부랴 이것저것 준비물을 챙기고 서울 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설레는 마음을 부여잡을 수가 없었다. 한 달이나 외국에 있게 되다니. 내가 가는 곳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위치한 샌디에고다. 유니스트의 해외 연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신청하게 된 이번 해외 체험에 나는 평소 친한 형과 같은 곳을 지원하여 가게 되었다. 한 달? 너무 많지는 않을까, 그러나 방학 때 집에 있어봤자 뭐 특별한 거 할까 싶어 과감하게 질렀다. 문제는 장소인데, 내가 가고 있는 샌디에고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전혀 없다. 원래 펜실베니아 주립 대학에 가려 했으나 여행 경비나 치안 등 여러 면을 봐도 서부 캘리포니아 쪽이 좋다는 생각에 결정한 것이었다.
거의 24시간에 달하는 긴 비행 여정을 끝내고 샌디에고에 도착하였다. 직행을 끊을 것을 그랬다. 지리를 익혀놔야 했기에 시차 적응을 할 것도 없이 형과 나는 바로 대학교를 찾으러 가보기로 했다. 우리가 한 달 동안 다녀야 할 대학인 UC San Diego 말이다. 도착 첫 날부터 무리를 한 탓인지 초저녁부터 잠에 들은 우리는 다음 날 아침 8시 UC San Diego의 외국인 교육 센터인 Extension Zone에 도착 했다. 정말 외국인 밖에 없었다. 온통 자기 나라 말로 얘기 하고 여기가 정말 외국이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모두의 영어 수준은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에 왠지 모를 자신감이 들기도 했다. 이 모든 외국 학생에게도 미국은 외국이었던 것이다.
간단한 레벨 테스트 후 나와 형은 같은 반인 위에서 2번째 반인 High Intermediate 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가 하는 수업은 Conversation Program 인데, 기본적으로 하루에 2시간 수업이고 기본적인 Vocabulary와 반 동료들과 대화를 하는 것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처음으로 대화를 하게 된 친구들은 스위스, 브라질, 일본인들이었다. 4명이서 각자 자기의 형제들에 대해 설명하고 뭐가 좋고 안 좋은지를 대화 해보라는 것이었는데, 처음이라 그런지 다들 서먹서먹하고 말도 꺼내지 않았다. 나 역시 처음에 낯을 가리는 지라 가만히 있었지만 이왕 외국에 나온 거 뭐가 무섭냐는 생각이 들어 먼저 말을 꺼내 나에 대해 소개하고 주제에 대해 토론을 이끌어 나갔다.
역시 영어는 어려웠다. 그리고 생각보다 모두들 영어를 꽤 능숙하게 하는 편이었다. 특히 스위스나 브라질 친구들은 원어민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혀를 잘 굴렸다. 입국 첫 날 저녁을 때워야 하는데 제일 간단한 대화로 때울만한 곳이 피자집 밖에 없어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전전긍긍 하던 때가 떠오른다. 며칠 수업을 더 들은 후 영어가 꽤 익숙해지고 자신감이 붙었다. 그렇다 실력이 중요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내가 뭐라 하던 간에 그들은 이해 할 수 있었고, 문제는 자신감이었던 것이다. 말은 계속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외국인들은 오해를 하게 된다, 우리와 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우리가 부끄럼을 타서 하는 행동일지라도 그들은 자신들에게 관심이 없거나 화가 났다고 생각해 버린다. 나 역시 생활해 보니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 할 수 있었다. 무조건 적으로 입을 닫아 버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매우 답답했었고, 사람의 마음가짐이란게 이토록 중요한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수업 시작한지 며칠이 채 안 지났을 무렵, 친구들로부터 Conversation Plus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 반 거의 모든 학생들이 그 수업도 병행하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 하루 2시간으로는 조금 모자란 감이 없지 않은가라고 느낀 나와 형은 당장에 그 수업을 추가 신청 하였다 그리하여 아침 9시부터 시작 1시에 끝나는 수업 시간표가 완성 되었다.
내가 다녔던 학교인 UC San Diego는 매우 큰 학교이다. UC 란 University of California 를 의미 하는데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명문 대학들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UC L.A. 라거나 UC Davis도 모두 여기 속한다. 우리 학교가 족히 5개는 넘게 들어갈 것 같은 크기였다. 사실 다 돌아보지도 못하였고, 만약 기회가 된다면 여기서 공부하고픈 마음이 든다. 학교 내에 기숙사가 있는데, 모두가 그곳을 쓰는 것은 아니다. 학교 외부에도 학생들이 따로 사는 기숙사 아파트들이 있다. 사설인데 우리는 그 곳에서 한 달을 머물렀다. 처음에는 또 교통이 문제였는데 학교 학생증을 받음으로써 단 번에 해결이 됐다. 학생증을 보여주면 시내버스를 공짜로 탈 수 있었던 것이었다. 미국에 와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샌디에고가 특별한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정말 살맛나게 잘 꾸며놨다고 해야 할까, 야자수 같은 나무들이 즐비했으며, 도로며 매우 예쁘게 정비 되어 있었다.
매주 화요일은 샌디에고 견학을 하는 날이다. San Diego Zoo, Mission Bay Beach, Balboa Park, Aquarium 등 유명 관광 명소들을 다 가보았다. 이 곳 샌디에고는 특이한 곳이다. 지리적으로 멕시코와 맞닿아 있어서 트롤리라는 지상 전철을 타고도 멕시코에 쉽게 갈 수 있고 이곳 역시 백인보다는 아시안 계나 히스패닉 쪽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특히 아시안 계, 여기가 미국 맞나 싶을 정도로 여기저기 아시안 계가 자주 보인다. 모두 한국 사람인거 같다고 느낄 때가 많다.
여기서 가장 좋았던 점은 당연하게도 영어를 쓰게 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왜 유학 유학 외치는지가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외국에 나오면 자연스레 영어가 늘게 된다. 비록 한 달 밖에 머물지 않았지만 영어뿐만 아니라 다른 것에도 뭐든지 도전을 해야 한단 자신감이 붙었다. 뭐든지 일단 해 봐야 한다는 것을 가장 크게 느꼈고 사람에 따라선 미국 와서도 고생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였다. 극 소심한 사람이라면 성격을 고쳐서라도 돈 값을 해야 할 것이다.
다소 아쉬웠던 점이라면 재정적인 면이었다. 유수의 대학을 다닌다는 것에 큰 가치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사실 영어만이 목적이라면, 근처에 학원이 많이 있다. 훨씬 싼 값에 conversation program을 이수 할 수 있다. 하지만 애초에 내가 이곳을 선택하기 전에 이 프로그램에 짧은 기간 동안 할 수 있는 문화 체험이라는 큰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별로 큰 사안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외에는 모든 게 만족스러웠다. 샌디에고라는 도시를 우연찮게 선택 하게 됐지만, 날씨도 여타 도시와는 달리 여름 내내 시원했으며, 바다가 끼어있어서 언제든지 서핑이나 해수욕을 즐길 수가 있고, 볼거리들도 많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이곳이 휴양지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는 것이다. 머물러 있으면서 휴가를 나온 거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실제로도 그렇게 오는 사람이 많기도 하고…
외국인 친구들을 많이 사귄다는 것은 매우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그들은 예상과는 달리 나와 다른 것이 없었고 모두가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마치 같은 나라의 친구처럼 영어로 통했고, 말이 쉽게 전달 되지않더라도 서로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 친구들과 페이스북을 통해 연락을 하는데, 다음번에도 그들이 한국을 방문한다거나 우리가 그들 나라에 갔을 때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 등이 큰 매력인 것 같다.
끝으로 이런 기회를 준 유니스트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방학 동안 정말 값진 경험을 했으며,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더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리고 우리가 첫 발판을 마련함으로써 더 많은 학생들이 외국으로 가는 경험을 쌓았으면 하는 바람이다.